나는 이렇게 늙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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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러한 노인을 보면 서글픈 생각이 든다.
흰머리를 검게 물들이는 분.
늙을수록 유행에 뒤떨어지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옷을 입으시는 분.
늙은이 냄새가 난다고 할지도 모르니까... 하시면서 향수를 뿌리고 다니시는 분.
비싼 구두, 비싼 넥타이, 비싼 보석, 비싼 옷, 비싼 차, 비싼 음식들을 쓰고, 갖고,
먹어야 늙은이도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하시면서 그렇게 사시는 분.
또 그렇게 살지 못해 안타까워 하시는 분.
요새 젊은 놈들은... 하시면서 온갖 욕설을 다 뱉으시는 분.
옛날에 우리 자랄 때는... 하시면서 온갖 좋은 일들만을 줄줄이 나열하시는 분.
내가 옛날에 무엇을 했던 사람 인 줄 아느냐...고 하시면서 목에 힘을 주시는 분.
나도 안 해본 것 없고, 안 겪어본 것 없다... 고
하시면서 만사를 단정적으로 말씀하시는 분.
똑같은 말씀을 또 하시고 또 하시고 또 하시는 분.
늙음을 빙자해 감히 할 수 없는 상스러운 말도, 앞뒤 사리에 맞지 않는 질책도
마구 흩뿌리는 분.
그렇게 사는 것이 노인의 권위를 유지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분.
나는 이러한 노인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헬스클럽 다니느라, 등산을 하느라, 이런 저런 신체단련을 하느라,
온 마음과 온 시간을 그런 일에만 바치시는 분.
몸에 좋고 특히 정력에 좋다면 가리는 것 없이 아무거나 찾아 잡수시는 분.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거나 어떤 모임에 가거나 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운동을
이렇게 저렇게 하고 어떤 음식을 어떤 보약을 어떤 건강 장수식품을 어떻게
먹었더니 또는 먹고 있어 이러저러하게 몸이 좋다고 자신을 과시하시는 분.
그리고 그것이 부럽고 그것을 하지 못해 속이 상하고 몸과 마음이 움츠러드는 분.
나는 이러한 노인을 보면 초연해진다.
겁먹은 강아지 처럼 자식이나 젊은이들의 눈치를 살살 보며 뒤로 뒤로 겉도시는 분.
용돈이 없어 자식도 손자도 친구도 아무도 만나러 갈 수 없는 분.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어리벙벙해서 조금도 자신을 가질 수 없는 분.
분하고 섭섭하고 괘씸하고 한스러운 것만 가득하여 세상이 밉기만 한 분.
몸이 일그러져 말을 듣지 않는데
마음은 여전히 살아있어 몸이 저주스럽기 짝이 없는 분.
마음이 헝클어져 생각이 구겨지고 느낌이 찢어져 판단이 제대로 되지 않는 분.
어서 죽어야지, 어서 내가 죽어야지... 하고
말씀하시면서 그러한 자학적인 발언이 실은 채워지지 않는 자신의 울분을
토해 내는 것이든가 다른 사람에 대한 미움을 감추는 그러한 것을 하시는 분.
그런데 정말 죽어야겠다고 생각하시는 절망과 체념 속에서
멍하니 흐린 눈으로 세월에다 자신을 맡겨놓고 흘러가시는 분.
나는 이러한 노인을 보면 다시 본다.
옷을 깨끗이 입으시는 분. 젊은이나 어린이나 남자나 여자나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나 많지
않은 사람이나 친한 사람이나 낯선 사람이나 모든 사람에게 예의바르신 분.
늙은이로서 젊은이를 질책하시는 것이 아니라.
부모로서 자식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인간을
염려하는 모습으로 젊은이들을, 자식들을 훈계하고 꾸중하시는 분.
자식들이 부모님을 부모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인간으로 존경하는
마음을 지니게 되는 그러한 부모의 자리에 있는 분.
건강에 안달하지 않아도 자기 몸을 학대하지 않아도 규칙적인 생활
만으로도 크게 유념하지 않아도 별로 앓지 않는 삶을 살아가시는 분.
넉넉하고 윤택하지 않아도 삶이 그윽하고 만족스러워
무엇을 먹어도 무엇을 입어도 어디에 살아도 즐겁게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고마워하며 살 수 있는 분.
스스로 절제하고 노력하여 모아 놓은 여력이 있어
자신의 용돈에 그리 궁하지 않은 분.
이제는 늙었어 라고 하는 말과 이 나이에 내가 뭘... 이라고 하는 말을
거의 하지 않으면서도 있을 자리와 할 일을 분별하시는 분.
자기 주변에는 언제나 흐뭇하고 귀하고 장하고
훌륭한 일이나 사람이 많다고 느끼시는 분.
그래서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노라면
세상이 제법 살 만한 곳이라고 느끼게 해주시는 분.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가능하면 자기 스스로 하고,
도움을 받을 때는 미안하오! 하고 참으로 고마워하시는 분.
살아온 과거의 성공을 나지막하게 이야기해 주는 분,
그리고 실패를 부끄러운 표정으로,
그러나 다 이겨낸 담담한 표정으로 증언해 주시는 분.
언제 삶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하시면서
자신의 주변을 흐트러지지 않게 정리하시는 분.
나는 이러한 노인을 존경한다.
안 보이던 것들을 이제는 더 볼 수 있게 되신 분.
권력이 봉사 기능을 가지기 때문에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가져올
명예와 힘을 욕심내어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하는 것을 보시는 분.
절망이 때로 없을 수 없지만 그것에만 빠져 있으면
그 종점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비참한 것인가 하는 것도 보시는 분.
욕심을 갖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것은 끝내 충족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채우는 것보다 욕심을 줄이는 것이 현실적인 삶이라는 것도 보시는 분.
자기를 애써 돋보이려고 하는 것은 실은 자기 확신이 없고
속이 텅 빈 모습이라는 사실도 보고, 늙음을 초조하게 산다는 것은
얼마나 추하고 딱한 모습인가 하는 것도 보시는 분.
그래서 때로는 하늘 저 깊은 속도 그윽하게 바라보고, 흘러간 세월의 흐름도
한꺼번에 한눈에 꿰뚫어 보시는 분.
내일과 모레도 투명하게 바라보고, 어제도 그제도
따뜻하게 바라보며, 사람들의 마음속도 이제는 조용히 들여다보는 분.
그래서 몸은 늙어가되 스스로 자신의 삶이 귀하게 늘 새로워지시는 분.
나는 이러한 노인을 만나면 그러한 노인이 되고 싶다.
들리지 않던 것들도 더 많이 들을 수 있게 되신 분.
큰 소리가 반드시 옳은 소리가 아니라는 것도 들어 알고,
힘없는 소리가 반드시 무용한 소리일 수 없다고 하는 것도 알고,
그렇게 큰 소리와 작은 소리를 두루 살펴 들으시는 분.
모든 침묵 속에서 그 침묵의 발언조차 들을 수 있으신 분.
자식의 소리도 그 소리 나름으로 들을 수 있고, 젊은이의 소리도
그 나름으로 들을 수 있고, 아픈 소리. 즐거운 소리. 미움의 소리.
사랑의 소리도 나름대로 다 알아들을 수 있는 분.
바위가 이야기하는 것도 들리고 꽃의 숨소리도 들리시는 분.
늙음의 소리도 들을 수 있고, 그래서 마침내 죽음이 다가오는 소리를
들으며 잔잔한 평화가 서서히 마음을 적셔오는 것을 온몸으로 들을 수 있는 분.
그러다가, 그러다가,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 모든 것,
그래서 자신의 삶 자체를 스스로 사랑했노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분.
나는 이러한 노인을 만나면 그렇게 늙고 싶다.
(정진홍 산문집 "잃어버린 언어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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