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과 중국
중국사람 에게는 평생 해 볼수 없는일이 세가지가 있다고 한다.
너무 많은 종류의 요리가 있어서 다 먹어보지 못하고 자기나라 글자인 한문을 다 배울수 없으며 땅이 너무 넓어 다 다녀보지 못하는 것이 그것이다.
때로는 여기에 방언(方言)이 너무많아 모국어를 다 배울수 없다는 항목이 추가되기도 한다.
한편 그 땅의 넓이를 나타내는 말이 ‘중국에는 없는것이 없다. 단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을 뿐이다'.
그래서 발달한게 장사 다. 특히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상(華商) 들 이 그렇다. 한편, 중국에는 일찍이 중화사상(中華思想) 이라는게 있었다.
여기에서 中은 가운데 중심이라는 뜻이며 華는 문화를 의미했으며 자기들만이 천하의 중심이며 발달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일종의 선민의식 이기도 하다.
따라서 여타의 나라들 은 오랑캐 정도로 생각하고 배척했다. 스스로를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던 중국이 깨진것은 그 유명한 ‘아편전쟁’ 때문이다.
1840년에서 42년까지 영국과 청나라가 격돌한 이 전쟁은 아편수입으로 인한 피해와 은(銀) 의 유출을 막기위해 청의 선종은 아편무역 금지령을 내리는 한편 임칙서를 광둥에 파견 영국상인들의 아편을 불태워 버리고 밀수업 자들을 처형했다.
이에 영국은 무역의 보호를 구실로 해군을 파견가장 전쟁이 발발했으며 청나라가 패하고 굴욕적인 ‘난징조약’ 이 체결됐다.
그결과 중국은 홍콩을 영국에 할양하며 1997년 7월 1일 99년의 조차기간이 완료 중국에 반환되었으며 홍 콩 특별행정구의 지위를 가지게 됐다.
광저우등 5개항구를 개항하며 영사관설치 와 함께 전쟁배상금 1200만 달러와 몰수 한 아편의 보상금으로 600만불을 영국에 지불 하게 했다. 이후 중화사상에 젖어있던 중국은 점차 유럽과 일본등 자본주의 세계의 종속적 시장으로 재편되었으며 특히 굴욕적인 '난징조약'체결을 통해 중화사상에서 깨어나기 시작했고 근대화의의식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아편전쟁은 중국에게 있어 문화사적으로 큰 의미를 가지는 사건이기도 하다.
거대한 중국대륙을 처음 통일한 사람은 진(秦)나라의 시황제(始皇帝) 였으며 그때가 기원전 221년 이었고 그는 화폐와 동량형도 통일했다.
그의 능(무덤)과 유 명한 ‘병마용’ 을 보면 이 인물의 스케일을 알수있다.
그리고 최후의 통일왕조는 여진족의 청(淸)으로서 1616년부터 1912년까지 중국을 통치했다. 조선의 지배권 을 둘러싼 청과 일본의 갈등 은 청일전쟁으로 이어졌으며 황해해전에서 일본군이 승리함으로 막을 내렸다.
그때가 1895년이다. 이어 국민당의 국민정부가 세워졌으나 모택동에 의해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수립됐다.
중국 공산당과의 내전에서 패한 '장개석'은 1885년 하나의 성(省)으로 독립했던 대만으로 옮겨가 서 정권을 유지했다. 대만의 공식국호는 중화민국이지만 국제적 으로는 중화타이페이(chines Taipei) 로 호칭된다.
중국의 오래된 ‘먹는문제’ 를 해결한 지도자가 등소평 이다. ‘횐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 다'. 그래서 지금의 중국은 정치적 으로는 공산당 일당독재이고 경제는 철저히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됐다. 이 기묘한 구조가 언제 어 떻게 발전할것인지는 중국 자신도 모른다. 지켜볼 일이다.
지금으로서는 '리콴유'의 싱가폴 모델이 유력 하다. 지난 6월 7일 과 8일 중국의 새 주석인 '시진핑'은 미국을 방문 '오바마'와 이틀동안 8시간의 회담을 했다. 시진핑은 7일의 1차 회동에서 거의 대부 분의 시간을 ‘신형대국관계’ 를 오바마에게 설명하는데 할애했으며 회담후 기자회견에서도 계속 이점을 강조했다.
시 주석이 역설하고있는 新型大國關係 는 국제사회에서 중국이 미국과 동등한 역할과 지위를 인정받되 양측이 서로 대립하고 충돌 하기 보다는 상생하고 협조하는 관계를 정립하는 외교 노선을 뜻한다.
전임이었던 '후진타오' 주석시절 중국의 전략은 ‘중국의 굴기’(떨쳐 일어남) 였으며 이는 결국 미국의 아시아지역 회귀로 쌍방간 대립이 표면화된 역작용을 일으켰다.
중국은 과거 냉전시절 소련과 미국의 극한적인 대립이 소련의 붕괴로 끝난사실을 직시 미국과의 화해를 통해 미국과 함께 세계를 지배하는 대국 이 되겠다 는것이 그 의도다. 그러나 '오바마'는 회담중 이 단어를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으며 ‘중국의 평화로운 부상은 미국에도 도 움이 된다.’ 라고 강조했을 뿐이다. 아직은 같은 레벨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건 사실이기도 하다.
미국 은 1607년 제임스강 연안에 조성된 영국의 식민지 였다. 1775년 미국 독립혁명후 1776년 7월 1일 독립을 선언했으며 1783년 파리조약에서 그 독립이 승인된 신생국가 이다. 정식명칭은 United States of America 이며 보통 ‘미합중국’ 이라고 부른다. 독립적인 50개주의 연방이기 때문이다.
주마다 별도의 경찰이 있기 때문에 연방 전체에 대해 수사권을 가지는 연방 수사국(FBI)이 그래서 생겨났다. 미 국은 본토와 알래스카 하와이를 포함 러시아와 캐나다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나라다.
중국이 큰 나라이긴 하지만 영토 면적으로 보면 미국보다 조금 작다.
현재 미국의 공군력은 여타나라의 공군력을 합한것 보다 더 막강하다. 그 무서운 화력은 상대할 나라가 없을 정도다. 11척의 항모를 운용 5대양을 지배하는 해군력도 상대할 나라가 없다.
중국은 소련의 낙후된 배를 사다가 수리 한 항모로 시운전중이며 다른 한척의 건조를 시작 했을 뿐이다. 경제 문화 학문에서도 미국은 지금은 물론 앞으로 상당기간 세계의 선도국 자리를 유지할 것이다. 미국은 로마이후 최고로 막강한 세기적인 국가다.
정말 중국은 미국과 대등한 대국이 될수 있을까.
지금 중국이 G2가 된것은 단지 경제력 때문 이다. 10년이상 세계의 저임금 공장이 되어 싸구려 물건들을 만들어 내면 서 국력이 신장됐다. 단순히 경제 규모로만 비교한다면 중국인들의 ‘대국의 꿈’은 가능한 얘기일수도 있지만 2012년말 기준 중국의 1인당 GDP는 아직 5400달러 수준이다.
한편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것은 요원한 희망임을 금방 알수있다.
미국에도 도시와 시골이 있다.
그러나 그 도시와 시골은 지역적인 차이일 뿐 의식주 생활수준은 똑같다. 일상생활의 내용에서 전혀 차이가 없는게 미국의 도시와 시골이다.
중국에도 도시와 시골이 있다. 그리고 중국에는 미국에 없는 오지(奧地-해안이나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내부의 깊숙한 땅)가 수없이 많다. 그 오지에서는 아직도 19세기의 삶을 살고있다.그들은 양말이 없어 신문지로 발을 감싸고 신발을 신었으며 개인의 이 익에 대해서는 거의 동물적 본능을 가지고 있었다.
중국의 오지와 미국의 시골은 한 두 세기안에 같은수준이 될수없는 질적 차이를 가지고 있다. 투르판(吐魯番)은 신강위구루 자치구의 현(縣)으로서 유명한 천불동과 교하성 고창고성이 있는 관광지로 중국의 국가급 풍경명승지로서 연중 내내 외국인들이 찾아오는곳 이기도 하다.
그 투루 판 기차역의 화장실 일을보기 위해 안으로 들어서니 칸막이가 전혀 없다.
어른들이 그것도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엉덩이를 들어 낸채 서로 쳐다보며 일을 보고있다. '마그레브' 지역의 후진국에도 이런 경우는 없다. 투루판은 오지가 아니라 시골의 세계적인 명승지다. 칸막이가 없는 더럽고 냄새나는 그 원시적 화장실이 중국의 현주소다.
지방공항에는 그 흔한 전광판도 없다. 비행스케쥴은 흑판에 사람이 백묵으로 쓰고있었다. 연착과 연발은 국내선인데도 거의 3,4시 간 정도이며 어나운스먼트도 없다.
모두가 죽은사람들 처럼 죽치고 앉아 기다리고 기다렸다. 연발한 배행기는 스케쥴에 없는 알 지도 못하는 공항에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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編輯... 장하다